56년 전 '혀 절단' 정당방위 재심요청 항고심도 기각 결정
송고시간2021-09-17 10:59
한국여성의전화 "사건 제대로 심리하려는 노력 있었나" 재항고 예정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5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70대 여성이 재심 요청을 기각한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법원이 또 기각했다.
17일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은 이달 6일 항고인인 최모(75)씨 재심 요청을 기각했다.
최씨는 올해 2월 17일 부산지방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에 불복해 부산고등법원에 항고했지만, 고등법원도 재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청구인들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확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적시했다.
또 "법권의 소송지휘권 행사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법률적 환경하에서 범죄의 성립 여부와 피해자의 정당방위 등 주장에 대한 판단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부산지법의) 재심 기각결정문을 그대로 복사한 듯 똑같다"면서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재판부의 항고 기각결정에 대해 분노하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의전화와 최씨, 변호인단은 재항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심 개시 촉구를 위한 시민들 연대를 위해 서명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최씨는 56년 전인 1964년 5월 6일(당시 18세)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1.5㎝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최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용기를 얻어 여성의전화와 상담했고 여성단체 등의 도움으로 지난해 5월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부산지법 재판부는 올해 2월 재심 청구는 기각하면서도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고 회자됐던 '혀 절단' 사건의 바로 그 사람이 반세기가 흐른 후 이렇게 자신의 사건을 바로 잡아달라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달라고, 성별 간 평등의 가치를 선언해 달라고 법정에 섰다"며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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