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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뉴] '나사 빠진' 장군들

송고시간2024-12-06 15:28

세 줄 요약

육군참모총장은 36여만의 지상군 병력을 통솔하는 육군의 최선임 장교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병력 이동과 작전을 지휘하는 군령권이 합참의장에게 넘어가면서 인사 등 조직을 관리하는 군정권만 갖고 있지만, 직위의 상징성은 물론이고 실제 권한은 합참의장을 사실상 능가한다.

육사 졸업생 중 최고의 리더에게 주어지는 대표화랑 중에서도 총장이 된 사람은 김 전 장관의 17기 동기인 김진영 대장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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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자
김재현기자

육참총장, 실력보다 정치에 좌우돼 군기강 해이 심화

노재현 12·12 반란 때 도피, 정승화는 김재규 제압안해

박안수, 계염 포고령 받고도 "어떡하지" 연발

국방위 현안질의에 답하는 박안수 육참총장
국방위 현안질의에 답하는 박안수 육참총장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5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경위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가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2024.12.5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육군참모총장은 36여만의 지상군 병력을 통솔하는 육군의 최선임 장교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병력 이동과 작전을 지휘하는 군령권이 합참의장에게 넘어가면서 인사 등 조직을 관리하는 군정권만 갖고 있지만, 직위의 상징성은 물론이고 실제 권한은 합참의장을 사실상 능가한다.

▶ 육참총장은 실력으로만 되는 자리가 아니다. 운이 따라줘야 한다. 육사 졸업 생도 중 성적이 가장 우수한 생도에게 주어지는 대통령상 수상자 중에서 참모총장이 된 사람은 김영삼 정부에서 임명된 김동진 총장이 유일하다. 육사 졸업생 중 최고의 리더에게 주어지는 대표화랑 중에서도 총장이 된 사람은 김 전 장관의 17기 동기인 김진영 대장 밖에 없다.

▶ 육사의 교훈이기도 한 지(智)·인(仁)·용(勇)을 겸비한 최고의 실력자 대부분이 총장 인선에서 고배를 든 것은 관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 이래 지금까지 군내 역학과 정치 중립, 지역 안배 같은 정치적 요인이 총장 인선을 좌우하다시피 했다.

베트남전에서 파병된 주월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개헌에 우려를 표했다가 눈 밖에 나 참모총장이 되지 못하고 중장으로 예편했다. ROTC 출신인 남영신 장군은 비육사 출신 최초로 총장이 됐는데, 문재인 정부의 '육사 배제' 기조 덕분이라는 말이 많았다.

땀 닦는 정승화 계엄사령관
땀 닦는 정승화 계엄사령관

박정희 대통령 저격 . 시해사건 - 11일 오후 속개된 구형 공판에서 검찰관의 논고가 계속되는 동안 이마의 땀을 닦으며 경청하는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 1980. 3. 13. (본사자료) (서울 =연합)<저작권자 ⓒ 2001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육참총장 인사가 정치에 휘둘린 것은 정권의 운명을 재촉하는 패착이 되기 일쑤였다. 채명신을 제치고 총장이 된 노재현 전 국방장관은 1979년 12월12일 밤 총장 공관 주변에서 총소리가 나자 한남동 단국대 캠퍼스로 피신했다가 인근 미 8군으로 가는 등 도피를 이어가다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당시 노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쿠데타를 진압했더라면 5공 군사독재 정권이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박정희 정부의 마지막 육참총장인 정승화 총장은 박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내란을 방조한 혐의로 보안사에 체포된 뒤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1979년 10월26일 밤 정 총장은 궁정동 안가 인근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총성을 듣고도 상황 파악도 하지 않은 채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로 향했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 총장이 피에 젖은 옷을 입고 박 대통령이 숨졌음을 알리는 김재규를 즉석에서 제압했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12.12 군사반란 주역들
12.12 군사반란 주역들

전두환 등 군사반란을 일으킨 주역들 기념촬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 12·3 비상계엄 발동 때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참총장의 행보를 두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현안질의에 나선 박 총장은 계엄 선포 직후 김용현 국방장관이 건넨 계엄 포고령을 받고 "계엄 상황은 (제가) 조금 약해서 '어떡하냐, 어떡하냐' 하다가 시간이 지났다"면서 자신은 시간 오류만 수정하고 포고령을 냈다고 밝혔다. 국회에 병력 투입 사실도 사전에 몰랐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 박 총장은 현안질의에서는 시종 맹한 표정을 지은 채 의원들이 질문을 던지면 노트에 받아쓰기 바빴다. 그가 탁월한 속기 능력을 갖췄는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 응징하라는 '즉·강·끝(즉시·강력히·끝까지)'을 외친 평소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박 총장뿐만 아니라 국회 병력 투입 의혹에 연루된 다른 고위 장성들도 하나같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다.

이들 장성은 6일 출국금지 대상에 오르며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들 중 한명이라도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며 행동에 나섰더라면 12·12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처럼 '진정한 군인'으로 역사에 남았을지 모른다. 북한의 핵공격 위협 속에서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믿고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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